역사공부

쿠빌라이 칸-다큐멘터리, 그리고 단상

역사 사랑 2012. 10. 4. 11:21

유툽에서 우연히 발견한, 히스토리채널에서 제작한 쿠빌라이 칸에 대한 다큐멘터리. 몽골제국, 특히 쿠빌라이 칸의 정복 전쟁과 원나라 창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강추할만하다. 다큐멘터리는 총 다섯개 클립으로 나눠져 있고 링크는 그 중 첫번째.

http://www.youtube.com/watch?v=znKNqj0-jGg&feature=channel&list=UL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내용 중 특히기억나는 사항들

-쿠빌라이 칸의 어머니가 자식교육에 상당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들에게 몽골 전사의 기백을 심어준 것과 더불어 지적한 교양과 유교적인 학식 또한 간과하지 않게끔 훈육했다고 한다.

-몽골족은 원래 유목민이라 한족과 같은 문자 문화나 농경에 기반한 문명이 없었다. 중원을 정복하고 수도를 지금의 베이징으로 옮긴 후에는 한족의 발달된 문명을 받아들여 통치 기반으로 활용한다.

-당시 원나라는 글로벌, 다민족 문화의 전형이었다(팍스 몽골리카). 동쪽의 고려로부터 서쪽에서의 폴란드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넓은 대제국을 건설. 그래서 쿠빌라이 칸의 궁에는 지배층인 몽골족 뿐만이 아니라 무슬림, 아프리카인, 유럽인들도 볼 수 있었다(우리가 아는 마르코 폴로 이야기도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쿠빌라이는 이런 외국인들에게 상당히 관대했다 한다. 아무래도 한곳에 정착하지 않은 채 그때그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다시 옮겨가는 유목민의 기질에서 이런 문화적 오픈 마인드가 나온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아래 그림은 위키에서 실어온 쿠빌라이 칸의 사냥행차도 인데, 오른쪽의 빨간 옷 입은 사람은 아프리카인이다.



-유교에선 사농공상이라 상업이 그다지 우대받진 않지만 쿠빌라이는 상업과 교역을 아주 강조하고 권장하였다고 한다. 실크로드도 이때 나온 것이라고 어디서 읽은거 같다. 당시 수도인 대두(연경, 지금의 베이징)는 상업적인 마인드가 아주 왕성했다고 한다. 제국의 번성은 바로 이렇게 발달된 상업에 기반. 쿠빌라이는 우편 시스템 또한 정비하여 자신의 메세지가 지리적으로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원활히 전달되게끔 하였다.

-역시 영웅의 뒤엔 내조의 여왕인 부인이 있었다. 부인인 차비(Chabi)는 정치적 감각과 문화적 소양을 갖춘 평생의 동반자이자 지지자였다. 여러명의 부인이 있었지만 차비를 아주 깊이 사랑했으며 이 부인이 죽고 난 후 쿠빌라이 칸은 우울증을 겪으며 과식과 과음, 향락에 빠짐과 동시에 정사에 흥미를 잃게 된다. 몽골족은 일부다처제라서 그다지 여자에 목맬거 같지 않지만 의외로 대제국의 황제 쿠빌라이는 순정남이었던 것 같다. 다행이 이때가 쿠빌라이 칸이 나이가 많이 들어 할아버지가 다 된 시점이라 그의 우울증이 제국의 몰락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맘만 먹으면 이세상 여인들 다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정남이란 점에선 공민왕도 좀 비슷한 면이 있는 듯 (실제로 공민왕의 증조할머니인 제국대장공주는 쿠빌라이 칸의 딸이다). 내조의 여왕이라는 유산은 노국공주 또한 차비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아닐까(따지고 보면 공민왕과 노국공주 둘다 쿠빌라이 칸의 후손임).

-몽골여인들은 초창기엔 유목민, 정복자의 전통에 따라 남자 못지않게 강건하고 터프한 성격으로 때로는 지도자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었으나 원나라를 세우고 유교사상을 통치기반으로 함에 따라 전통적인 조용한 현모양처형의 여성상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조상때부터 내려오던 자주적인 여성성의 면모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을 것으로 추측.

-참으로 신기한게, 쿠빌라이 칸이 원나라를 세움과 동시에 자신의 선조때부터 내려오는 유목민적 전통을 거의 버렸다는 점이다. 이는 대제국을 통치하려면 보다 일관되고 안정적, 통일된 시스템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인데, 반대로 몽골 고유의 정복자 마인드, 진취적 기상, 활달함이 약해지는 결과를 나은게 아닐까. 예전에 드라마 "신돈"에서 노국공주가 그런말을 했던거 같다. 유목생활을 하며 게르를 짓고 떠돌던 몽골족들이 집을 짓고 안락을 생활을 하게 되면서 기상이 흐트러지게 되었다고...그러면서 공민왕과의 신혼 첫날밤을 초원의 게르에서 보냈던 걸로 나왔었다. 물론 드라마상의 말이긴 하지만, 어느정도 일리가 있어보인다.

-당시 팍스 몽골리카의 지배 영토 및 영향력으로 본다면 안 망하고 살아남은 고려가 정말 대단하다. 물론 원나라의 사위국이라는 정치적인 굴육을 감내해야 했지만.. 몽골족은 자신에게 투항하지 않는 적의 경우 머리 또는 귀를 모두 베어 쌓아놓거나 상당히 잔인하게 적을 취급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치고 인간적이고 안 잔인한게 과연 있을까 싶다). 하지만 반대로 투항하는 적에게는 용서하고 나름대로의 평화를 보장해주었다 한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명분이고 뭐고 전쟁같은거 안하고 목숨 부지하는게 더 중요했을 것인데, 아무튼 고려가 사위국이 되면서 몽골 공주들 받아들이고 더이상의 큰 전쟁 없이 넘어간 건, 당시 몽골 깃발 아래 쑥대밭되고 남아나는 거 없이 망했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정말 대단하게 평가해야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