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의 사망 이후 다시 찾아온 서양과의 교류 기회. 그러나 경제적, 자연적으로 좋지않은 타이밍 및 이제 고여서 썩은 물이 되어가는 집권층 때문에 그 좋은 기회조차 다시 잃어버린다. 경신 대기근으로 굶어죽는 백성들이 넘쳐나고, 소빙하기때문에 혹한에 시달리고, 조정은 그와중엔 상복을 1년입냐 3년입냐 가지고 치고박고 싸우고...어휴...답이 없다. 벼슬아치들이 뜻을 모아 백성들을 위한 실질 대책을 논의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저리 뜬구름잡는 언쟁이나 계속하고 있으니, 외국과의 교류는 커녕 내부 문제 처리에도 버거웠고, 따라서 하멜 일행을 통해 국제정세도 파악하고 교역도 하고 군사력도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는 소현세자때처럼 산산조각 물거품. 오로지 소중화가 최고이고, 외세받아들이고 배우면 무슨 나라에 큰 해라도 입는것처럼 큰일나는 줄 아는 꽉막힌 집권층. 답답하다...
이윤석씨가 말한것처럼, 하멜 일행의 조선 표류는 "교류기"로 남을뻔한 기회를 조선 스스로 밀쳐낸 "버려진 초대장"이다. 같은 시점, 일본의 에도 막부는 네델란드와의 교역을 통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게 되고 18세기에 가서는 의학서적까지 번역되었다는데...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보다 조선에 더 해가 되고 결국은 나라를 말아먹게 한게 바로 교조화되버린 성리학적 사고관이 아닐까 한다. 일본이나 중국에 치이느라 방어적으로 된게 이해는 가지만 조선은 왜 뻗어나가고 개척하고 탐험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는지, 그 시대 때 안 태어난게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사진은 암스테르담에서 찍은, 예전 동인도회사에 소속되어 바다를 항해하던 교류선를 복원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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