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극죠아는 "신의"에 나오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커플의 팬이다. 예전에 "신돈" 보면서 이 커플에 한동안 몰입하기도 했었는데 그때에 비해 이번 류덕환-박세영 커플은 더 풋풋한 느낌이 많이 든다. 아래 상플은 의선덕에 아들 딸 잘 낳고 사는 공노커플에 대한 이야기. 역사적으로 실제로 그 사랑의 결말이 비극인 걸 알기에 이런 상플 쓰면서 잠시 위로받고, 또 위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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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간 딸아이의 아이들이 오늘 중으로 연경에 도착할 것 같다는 소식에 위왕은 아침부터 수라도 거르고 초조하게 궁 안과 밖을 왔다갔다 하였다. 왕이 되어 고려로 귀국하는 딸 내외를 떠나보낸게 이십여년 전이었다. 그동안 여러번 서찰이 오갔기에 타국땅에서 무탈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혹시라도 연경에서 즐겨가던 곳이 생각나거나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이 먹고 싶어 향수병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한시라도 걱정이 떠난 적이 없었다.
막내딸로 곱게 키웠기에 오래동안 곁에 두고 왕래하며 살고 싶었다. 허나 당시 불모로 잡혀있던 고려왕자인 왕기와 결혼시키라는 기황후의 명에 어찌 반박할 힘도, 명분도 없었다. 순제를 쥐락펴락하며 무서운 실권을 휘두르고 있는 기황후에 맞선다는 것은 내 목숨을 거두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에 그저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또하나, 위왕의 여동생인 조국장공주 또한 사위의 아버지 되시는 충숙왕과 인연을 맺었으며 그 아들인 용산원자가 위왕부에 거처하고 있었던는지라 고려왕실과는 익히 왕래가 있던 사이였다. 안타깝게도 아들을 낳은 후 여동생은 얼마 못가 세상을 뜨고 말았으므로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자 자신의 조카인 용산원자를 직접 거두어 친자식처럼 귀하게 키웠던 위왕이었다.
“그래, 어디쯤 오셨다느냐?”
“이제 한 시간이면 도착할 듯 하십니다. 개성에서 연경까지 워낙 먼 길이라 왕자님과 공주님께선 많이 지치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그렇겠지. 이렇게 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더냐…바다 건너 오는 길이 그리 험하지 않았었으면 하는데…수랏간에 일러 이제 슬슬 음식상을 차리라고 일러라.”
딸아이가 너무 보고싶어서 한번 고려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던 위왕이다. 허나 반원정책을 추진하며 거침없는 개혁적인 행보를 걷는 사위에게 누가 될까바 그리움을 속으로누르고 또 눌러왔다. 그러나 이제 어엿한 3남2녀의 어머니가 된 딸 아이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 누르더라도 또 떠오르고 떠올라 이제는 위왕 자신이 병이 날 지경이었다. 딸도 이제 부모가 되었으니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아줄까 기대했었는데 다행이 고려에서 세번째 왕자와 첫째 공주를 자신의 생일연에 맞춰 연경에 사절로 보낸다는 전갈을 알려왔다.
다른 몽골 공주들과는 달리 노국공주는 남편과의 사이가 더없이 좋았다. 결혼한 이래 한번도 싸운적도 없고 의견 충돌이 있었던 적도 없다. 원나라에 반기를 드는 공민왕의 정책들에 한번도 반대한 적도 없거니와 굳건한 군주가 되기 위해선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줄곧 왕께 아뢰었다. 혹시나 자신이 원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왕의 정치에 걸림돌이 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기 위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남편을 지지해왔다.
물론 그런 입장을 취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아렸다. 아직 연경에 계신 부모님 형제, 조카들…이들이 자신 내외로 인해 혹시 반역으로 몰리지는 않을까 불안하였다. 이미 기철형제와 부원배를 칼로 다스린 공민왕이었지만 이에 보복하고자 왕위를 갈아치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기황후가 있는 한 노국 공주는 두 나라 사이에서 홀로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이었다. 남편을 사랑하고 고려를 사랑하고 또 이 나라를 물려받을 내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피를 나눈형제들에게 완전히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 왕 앞에서 이런 자신의 심정을 결코 내색한 적은 없지만, 깊은 밤 홀로 곤성전에 앉아 상념에 잠길때면은 서러움이 밀려와 혼자 운 적도 참 많았다.
부모형제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떠나온지 어언 이십년…그동안 아버님은 얼마나 늙으셨을지 어머님 건강은 어떠하신지…서찰에는 항상 우리는 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지만 혹시나 타국에 시집간 딸이 걱정할까봐 항상 좋은 말만 적으셨으리라는 것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예전과는 달리 심상치 않아보이는 원나라 황실의 내분 또한 신경 쓰였다. 혹시나 오빠들이 그런 것에 휩쓸리지는 않았을지… 왕족이야 평소엔 먹고 살 걱정없이 누릴 것 다 누리지만 반역에 걸리는 순간 목숨은 파리의 그것과 다를바가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안다. 자신 때문에 친정가문이 다치는 일은 없을까 하루라도 그 걱정을 마음 속으로 내려놓은 날이 없었다.
공민왕은 21세에 보위에 올라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하였다. 원나라 관제 및 변발과 호복 폐지, 기철을 필두로 한 부원배 세력 제거, 정방 폐지, 쌍성 수복 등… 허나 이런 개혁은 부인의 전적인 내조가 없었다면 애시당초 불가능할 일이었다. 원나라 사람이지만 자신보다 더 고려를 챙기는 왕비는 모든 예법이나 의식을 고려에 맞추었다. 연경에서의 신혼시절 공주는 마유주(아이락)나 양고기를 즐겨 먹었지만 고려에 와서는 한번도 찾은 적이 없다. 말타기 또한 더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에 공민왕 자신이 글씨를 쓰면 옆에서 먹을 갈았으며, 같이 서책이나 그림책을 보며 서체나 화풍에 대해 토론 하였으며, 그림을 그릴 때는 물감 준비는 물론 때때로 그림의 대상이 되주었다.
정치적인 지지는 물론 일상의 하나부터 열까지 왕비는 임금을 따랐으며 그렇기에 왕비를 향한 연모의 감정이 나날이 커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나고 이제 익숙할 때도 되었지만 왕비와 단 둘이 있을 때면은 항상 설레고 떨리는 감정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고려의 어떤 여인을 베필로 맞는다 한들 왕비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백년해가 아니라, 천년, 만년 이 윤회의 끈이 계속 되는 한, 아니 끊어진다 하더라도 왕비와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왕비가 아닌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늙어서도 혹시 왕비가 먼저 죽거나 자신이 먼저 죽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기에, 사찰에 들를때마다 꼭 한날한시에 둘이 같이 영면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의선 덕분에 다행이 왕비와의 사이에 결혼초부터 아들 딸 여럿 두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엔 왕비에 대한 미안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원에 반기를 드는 남편에게 한번도 찡그린 얼굴을 보인 일 없었지만 그 속은 말이 아니었을 것임을 알기때문이다.
연경 신혼 시절 장인이신 위왕 전하는 유난히 막내딸인 공주를 자주 찾으셨다. 이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 그러셨던 것 같다. 고려로 데리고 들어가던 날, 내 딸 잘 부탁한다고 손을 꼭 잡으시며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더욱이 이제 부모가 되고 나니 그때 장인의 마음의 더 잘 알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직접 왕비와 아이들을 데리고 장인을 찾아뵙고 싶으나 왕이라는 직책, 더군다나 반원정책을 한창 밀어부치는 이 이 시점에 왕의 일가가 연경으로 행차한다는 것은 누가봐도 용납이 안 될 일이었다.
달 밝은 보름 밤, 강안전에서 수렵도를 그리다 예전에 말을 즐겨 탔다던 왕비가 생각이 나서 붓을 놓고서 곤성전으로 향했다. 매일 밤 걷는 익숙한 길이지만 오늘따라 발걸음이 더욱 설레는 것 같았다. 아마 보름날이라 그런가 보다. 곤성전 주위는 유난히 조용했다. 늦은밤이라 이미 침소에 들었는지 방에 불은 꺼져 있었고 시중드는 나인들 또한 침전에서 먼발치 물러나 있었다.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해서 문에다 귀를 대고 자세히 들어보니 울음 소리를 억지로 참으며 꺽꺾 거리며 왕비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문고리를 잡고서 망설이다 안으로 들어갔다. 불은 꺼져 있었으나 워낙 달밝은 밤이라 왕비의 모습이 뚜렷히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천조각 하나를 가슴에 부여잡고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눈물이 범벅이 된 왕비는 왕이 오는 줄도 몰랐다. 떨고있는 왕비의 손을 살포시 붙잡았다.
“어찌 그리 우십니까..혹시 안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전, 전하…송구하옵니다. 드시는 줄 몰랐습니다. 불을 밝히겠습니다.”
왕이 일어서는 비의 손목을 잡고서는 다시 앉혔다.
“달빛이 밝으니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어찌 그리 구슬프게 아프게 우셨던 것입니까? 왕비의 우는 모습에 제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더랬습니다. 혹시 제가 섭섭하게 한 것이 있었습니까? 아님 아이들이 그대의 맘을 아프게 하였습니까?”
“아닙니다…그냥…그냥 갑자기 몸이 안좋아서 그런것 뿐입니다. 별 일 아니니 신경쓸 필요 없으십니다. 전하…”
말끝을 흐르며 왕비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말을 하는 그녀의 안색이 유난히 슬펐다. 전에 본적 없는 그런 슬픈 낯빛이었다.
“그대와 함께 한지 이십년이 넘었습니다. 이젠 숨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은지, 슬픈지, 어디가 편안하고 안좋은지 다 압니다. 괜찮으니 말씀해 보세요, 혹시 압니까 내가 조그만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지.”
“그럼 염치 불구하고 말씀 올리겠습니다. 전하께 올리기 송구스런 말이란 걸 알지만… 실은 연경의 제 어머님의 생신이 오늘이었습니다. 딸자식된 도리로서 직접 가서 인사 올리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원황실의 사람이기 이전에 고려왕비이기에 어머님께는 석달 전에 간단한 선물과 서찰만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서랍을 정리하다 예전에 고려로 올때 어머니께서 주신, 비단천에 수놓은 수럽도를 보고는 갑자기 부모님 생각도 나고 예전에 살던 연경의 궁과 산천초목이 너무 그립고해서 그만… 송구하옵니다. 다시는 이런일 없을 것입니다.”
왕비는 들고있던 천조각을 보석함에 다시 넣었다. 이를 지켜보던 왕은 마음이 착잡했다. 보석함을 서랍속에 다시 넣고는 자리에 앉은 왕비의 손을 잡았다.
“왜 진작 말하지 않으시고 혼자서 감내하셨습니까… 이리 아름다운 그대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은 나에게도 부모님과 마찬가지이거늘… 사실 나도 알았습니다. 그대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위왕비께 따로 선물을 하나 보내드렸습니다.”
왕비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공민왕 재위 후 반원정책으로 인해 원나라 황실일가에 대한 교류는 끊긴 상황이었다. 물론 그 사이 국경 문제나 군대 협조 문제로 간간이 대신들이 서로 왔다갔다 가긴 하였으나 이는 어디까지 정치적 사안였지, 황실 사람들 간의 공식적 교류는 기씨 일파의 척살 이래 15여년간 중단된 상황이었다. 왕비 또한 양국 왕실간의 민감한 분위기를 고려해 왕께 결코 연경의 위왕궁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적은 없었다.
“전하! 전 그것도 모르고… 이 망극한 마음 어찌 전할 길이 없사옵니다.”
“아무래도 대신들 눈치도 있고 또 기황후가 알면 혹시 장인께 나쁜짓을 할까봐 대외적으로 알려가며 연락을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허나 대신들 눈을 피해 몇번 서찰도 보내고 또 선물도 보내드렸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숙인 얼굴 밑으로 구슬같은 눈물 방울이 연달아 떨어졌다.
“허허, 평소에 그리 씩씩한 왕비께서 어찌이리 우십니까, 이리 울보셨습니까? 하하 나 혼자 보기엔 아까운 광경입니다. 우리 세자가 지 어미 이리 울보인 걸 알면 놀라겠습니다. 하하하”
왕비는 우는 모습 조차 아름다웠다. 사실, 왕비가 하는 모든 것이든 어여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민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왕비의 뒤로 가서는 꼭 껴안았다.
“울지마세요, 부인. 위왕전하 부부께는 여태까지 3년마다 부인의 초상화를 보내드렸었습니다. 그동안 많이 보고싶어하실 듯 해서… 고려로 온 첫해 우리옷으로 갈아입고서 강안전에 앉아계신 모습, 우리 둘째를 회임하여 만삭이 되셨을 때 모습, 뒤뜰 정원에 핀 모란 꽃 앞에서 활짝 웃으셨던 모습, 풍악산에 올라 느티나무 정자에서 청자 다기에 차를 드시던 모습, 갓 태어난 넷째를 안고 계시던 모습, 흥왕사 대웅전에서 합장하고 불공 드리던 모습 모두 화폭에 담았더랬습니다. 모르셨지요? 그때 그렸던 왕비의 그림들 모두 위왕궁에 가있다는 걸..하하”
“전 그것도 모르고… 이 송구한 마음 전할 길이 없습니다.”
“그대를 위해 선물을 하나 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섯달 뒤면 위왕 전하의 생신연이 있을 거라고 들었는데, 그때 우리 아이들을 연경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마음같아선 그대를 데리고 나 또한 장인께 인사드리러 가고 싶지만 워낙 상황이 상황인지라…거기까진 힘들 듯 하고 대신에 우리 왕자와 공주가 가서 인사드린다면 장인께서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전하,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대신들의 반대가 심할 듯 하옵니다. 안그래도 원나라 황실 사람이라면 치를 떠는 이들이 많을텐데, 우리 아이들을 보낸다고 하면…. 과연 그들이 찬동해줄지요? 또, 기황후가 만일 우리아이들이 연경에 오는 걸 알게 된다면...가만 있을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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