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분량 개미 발에 끼인 때 보다도 못했지만 그래도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참 애틋하고도 아련했다. 1회때 서로 눈길만 마주쳐도 싸한 기운이 돌면서 분위기 냉랭해지던 것과는 완전 180도 다른 모습이다.
오늘 공민왕이 정동행성에 가기전 노국공주와 작별 인사하는게 그나마 둘이 제대로 붙어있는 장면이었다. 기철과 덕흥, 손유 등 악의 축이 다 몰려있는 호랑이 소굴에 자기발로 찾아가겠다는 공민왕. 그러나 그런 행보에 힘을 실어주기 보다는 역시 딴지를 걸기에 바쁜 대신들 및 심지어 왜 가고자 하는지 납득 못한 최영까지. 공민왕의 결정에 다들 전적으로 따라주지는 않는 상황에서 노국공주만은 모든 걸 이해한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공주의 "이해"는 머리 속의 합리적, 논리적 사고 및 냉정한 상황판단으로부터 도출된 차가운 이해가 아닌, 뜨거운 "지지"와 "믿음"의 다른 말이다.
그러면서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노국공주를 보니 언젠가 조일신의 난을 피해 현고촌으로 피난갔을 때가 생각났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때문에 궁을 탈출하면서 헤어진 두 사람이 처음으로 현고촌에서 만나던 날, 노국공주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라고 묻는 공민왕에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궁에서는 볼 수 없었던 편하고도 환한 미소와 (무거운 가채를 안 써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서 공민왕은 "앞으로 자주 기다리시게 해야겠습니다"라고 화답한다. 왠지 그때 그 말이 복선 또는 예언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정동행성으로 떠나는 공민왕은 어쩌면 부인을 영원히 기다리게 할 수도, 노국공주는 남편을 영원히 기다리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공민왕이 떠나고 지원병 파견에 대해 대신들의 수결이 얼른 떨어지길 기다렸으나 그들은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만 계속할 뿐이고 결국은 노국공주의 최후의 한마디 일갈에 지원병 파견 통과. 악의 소굴에서 절명의 위기까지 갔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침내 도착한 금군들과 최영 덕에 공민왕은 간신히 살아난다.
사실 이번에는 공민왕이 중신들의 뜻을 통합하고 보다 자주적인 나라의 군주로서 새로 거듭나고자 하는 취지가 강했기 때문에 다소 무모해보이는 그럼 위험한 행보를 취한 것이고, 결국은 덕흥군을 원나라로 내쫓고 왕족의 타이틀을 삭탈하는 등 어느정도 그 도전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 허나, 노국공주를 저리 초조하게 기다리게 하던 공민왕은 14년뒤 오히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먼저 떠나버린 정인을 영원히 기다리게 될 자신의 처지를 상상이나 했을까.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은 행복하다. 지금은 비록 못 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리라는 희망은 고된 삶을 살아가는데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1%라도 있는 경우에 한해서다. 이승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기다림은 그리움이 되고, 그 그리움은 결국은 한이 되어 정신을 갉아먹는다. 노국공주의 사후 정신이 무너져 내렸던 공민왕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은수가 노국공주에게 한말 "오늘처럼 매일매일 사랑해라, 옆에 있어도 그리울 그런 사랑해라"는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내일을 기약하는 기다림보다는 "carpe diem"의 정신을 발휘하여 오늘과 현재에 더 충실하는 삶, 바로 이게 저 비극으로 운명지어진 커플에게 더 필요한 미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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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현재에 충실해라, 미래는 최소한으로 믿어라): 호레이스의 라틴어 송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외치던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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