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광해군 계축옥사(영창대군 살해 및 인목대비 유폐 사건)가 일어나기 이전 광해군은 여러 당파의 균형을 유지하며, 국제 정세에는 현실적으로 대응하는 지혜로운 왕이었다. 당시 명의 파병 요구나 후금(이후 청나라가 됨)에 대해 명분이나 의리가 아니라 국익을 위한 선택을 추구했던 왕인 것 같.. 역사공부 2014.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