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망하는 시대 또는 몰락이 예정되어있는 영웅을 보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안그래도 세상살이 팍팍하고 고된데, TV 드라마에서까지 암울한 것 보고싶지 않은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간다. 깊이있고 뭔가 메세지를 전하는, 한마디로 철학이 들어간 사극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신돈"(2005-2006, MBC)의 경우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10%언저리의 시청률로 마감한 사실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성향을 반증한다. 드라마는 고려말의 암담한 상황 속에 개혁을 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공민왕과 신돈이 중심이 되나 그 개혁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공민왕과 노국공주 간의 러브라인 또한 주된 중심축이지만 이 또한 공주의 죽음으로 비극으로 끝난다. 물론 중간 중간 전쟁에서 이기거나 부원배를 척할하는 것과 같은 통괘한 장면들이 나오긴 하지만, 결국엔 영웅들의 몰락으로 결론나는 드라마라 사람들이 딱히 보고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사람들은 드라마의 처음에선 처음에 고난을 겪고 불행하더라도 결국엔 성공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걸 바란다. 소현세자 이야기, 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커플에만 초점을 둔 이야기가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면 하지만 이같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고려시, 시청률이라는 걸림돌 덕에 실제 제작이 쉬울 것 같진 않다.
이에 반해 오페라에선 해피엔딩의 희극보단 안타까운 죽음이나 자살로 끝나는 비극이 더 대세이다. 베르디의 가장 유명한 세 작품인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를 비롯해 푸치니의 "나비부인", "라보엠", "토스카", 바그너의 "발퀴레"("반지" 시리즈 중 두번째 작품),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부 주인공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이다. 네 작품으로 이루어진 바그너의 "반지"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덜한게 "용감한 왕자가 잠자는 공주를 구했다"는 해피엔딩의 내러티브 원형을 따른 "지그프리트"이고, 가장 인기있는게 지그프리트의 부모의 비극적 사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 "발퀴레"이다.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5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은 무대위 펼쳐지는 주인공의 고난에 마음아파하며, 그들이 부르는 애절하거나 격렬한 감정을 토로하는 아리아에 눈물흘리며, 결국엔 피할 수 없는 처절한 비극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에 깊은 연민을 느낀다.
TV드라마는 해피를 좋아하고, 오페라는 새드를 좋아하는 것. 왜 그럴까? 드라마는 몇달씩 길게 가는 것이라 암울한 분위기라면 긴 시간동안 축축 처지며 마음 속 무거움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음에 비해, 비교적 단시간에 끝나는 오페라는 비극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짧고 굵게 느끼는 것으로 끝난다. 고단한 삶과 지친 영혼에 위안을 주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재밌게 웃고 즐기며 대리만족을 통해 행복을 경험하는 것, 반대로 뼛속 깊은 곳까지 비극적인 것을 간접 경험하면서 눈물 콧물 다 쏟고 울어버림으로써 감정의 정화를 거치는 것. 이 두가지 방법에 가장 최적하된 매체가 각각 TV드라마와 오페라가 아닐까 싶다. 즉, 기쁘고 유쾌한 것은 오래가는 TV드라마를 통해, 슬프고 암울한 것은 오페라 처럼 무대위에서 단시간에 끝나는 것으로.
'잡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현세자 가상 캐스팅 및 제작진 (0) | 2012.10.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