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대풍수"가 중요한 사건들을 그냥 후룩후룩 널뛰면서 지나가는 바람에 중요한 인물인 노국공주나 신돈이 다소 뜬금없이 극중 죽음을 맞이하였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하기 쉽상인 것처럼, 이렇게 번개불 콩 볶아먹듯 전속력으로 날라가버리니, 개혁가가 되어 뭔가 해보려고 했던 신돈이 뭐하는지도 알릴 새 없이 갑자기 죽어버렸고, 노국공주의 예상치 못한 죽음 및 이에 슬퍼하는 공민왕의 감정선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그냥 막 지나가버렸다.
특히 반야나 노국공주에 대한 공민왕의 캐릭터가 도대체 뭘 얘기하고자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극중 분량이 개미 눈꼽의 때만큼이어서 그런지 노국공주랑 뭔가 애틋하고 아련한 추억을 남길만한 결정적 에피소드도 없었고, 그와중엔 반야에게 맘이 가기도 하고, 공주가 죽고나선 초상화 보면서 조금 슬퍼하다가 반야의 아이를 보고는 행복해하고 동시에 자제위와의 동성애도 은근 암시하는 듯 하고...편집상의 문제로서 중간에 생략된 게 너무 많아서 그런지, 아님 이성계 장군의 부각에 힘쓰다보니 상대적인 패배자인 공민왕에 대한 인물화에 공을 덜 들여서 그런건지, 아님 아예 공민왕은 처음부터 일관성도 없고 그냥 그런 인간이었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은건지. 1차원적인 악인도 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층적인 면모를 가진 치밀하게 복잡한 인물도 아닌, 시간 또는 애정이 없어서 그냥 막 쓴 듯한 인상이다.
노국공주의 경우 공민왕에 비해선 캐릭터의 일관성이 있었다. 물론 마냥 착한 사람만은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 영지옹주의 상황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이기적인 모습도 보이긴 한다. 허나 전반적으로 공민왕에 대한 애정, 원에 대항한 정치적인 조력자, 후사를 이어 왕실을 튼튼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 있어선 강단있고 기품있는 왕후의 모습을 잘 보여준 듯 하다. 특히 공주를 연기한 배민희 배우분은 발음도 정확하고, 목소리도 좋고(기품과 위엄이 있는 톤), 감정 표현도 설득력 있고, 전체적으로 호소력 있는 연기를 펼쳤다. 노국공주가 30대에 접어들었다면 정말 저런 모습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배배우님이 연기하는 노국공주가 계속 나왔으면 했지만...역사대로 난산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다만 노국공주의 죽음이 너무 단순하게 그려진것 같은데 좀 더 드라마틱하게 장렬하게 묘사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공주를 잃고서 폐인이 되는 공민왕의 모습 또한 좀 더 섬세하게 그렸더라면 굳이 동성애나 그런거에 기대지 않더라도(개인적으로 이는 조선 유학자들의 날조라고 생각한다) 공민왕이 정사에 대한 의지를 잃고 무너지는게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을지. 배배우님과 류배우님이 연기력도 상당하고 분위기나 케미스트리가 좋은지라, 노국공주의 죽음과 그 후폭풍이 좀 더 드라마틱하게 그려졌다면 자신들의 연기력을 확 뽐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두분 다 조만간 사극에서 다시 볼 수 있었음 한다.
*아래 이미지들은 화면 캡쳐한거. 마지막 순간, 저 둘의 앞쪽으로 지나가던 연꽃 모양 장식물이 "인연"을 암시하는 것 같아 인상깊었다. 이 세상에서 제대로 꽃도 못 피어보고 헤어진다 하더라도 다음생, 다다음 생에선 다시 만나 인연을 맺으리라 말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열연한 배배우님과 류배우님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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