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23회-기철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쇼펜하우어의 "의지"
종방을 하루 앞두고 있어서인지 오늘 "신의"는 그냥 전부 다 섭섭했다. 이제 내일이면 공민왕도, 노국공주도, 최영도, 은수도, 기철과 그 사형제들도 끝난다 생각하니 시원섭섭한 맘이 앞선다.
기철은 원래 절대적 선인 최영과 공민왕에 대항해 절대적 악의 축으로 설정되었으나, 드라마가 진행됨에 따라 악역이 아닌 불쌍한 역이 되버렸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발버둥치며 왕씨가 지배하는 현 체제에 끊임없이 위협을 가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건 "넌 안돼"라는 낙인 뿐. 누이가 원나라 황후고 조카가 차기 황제면 뭐하나, 자기는 고려에선 결코 왕이 될 수 없는 신하에 불과한걸. 그렇게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위해 날뛰고, 결국은 빙공을 쓰다 자기 몸까지 망가뜨리는 기철은 언젠가부터 "인물"(character)이 아니라 "상징"(figure) 또는 "메타포"로 보이기 시작했다. 즉, 원나라의 외척이자 고려왕을 위협하는 막강 권력을 휘두른, 특정 시공간과 연결된 역사적인 기철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결코 채워지지 않고 아무리 아무리 먹어도 항상 배가 고플뿐인 아귀와도 같은 "욕망의 상징체"가 기철이라는 인물이 표현하고자 하는 실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나오는 맥베스 부인과 드라마적으로 서로 비슷하다. 레이디 맥베스도 맥베스의 부인이라기 보다 욕망 그자체를 표상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심장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느니, 아무리 먹어도 항상 고프다는 기철의 말은, 사실 약 150년 전의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파고 들었던 일생일대의 주제이기도 하다. 당시 불교철학의 영향 아래,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인간의 끊임없는 의지 추구를 논하는데, 이때 "의지"란 그냥 내가 하고싶다, 해볼까 이 차원이 아니라, 욕망에 대한 맹목적이고도 절대적 추구를 뜻한다. 이 브레이크 없는 욕망은 일시적으로 충족될지라도 다시 갈망의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절대적인 충족점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의 삶이 고달픈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의지를 버리고 비우는 삶으로 돌아가는게 행복한 길이라고 쇼펜하우어는 주장한다.
기철은 하늘 세상을 너무나도 가고 싶어하고 이에 대한 집착은 이제 의선에 대한 병적인 스토커 행위로 발현되고 있다. 이 불쌍한 중생 기철이 천혈을 통해 500년 뒤 독일의 쇼펜하우어를 만날 수 있다면 그 마음의 병이 어느정도 고쳐지지 않았을까. 적어도 기철의 맹목적 "의지"에 대해서 쇼펜하우어는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정은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천혈을 타기 힘들다면 당시 국교였던 불교 철학을 좀 더 깊게 공부했더라면 기철의 심병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는 완화되지 않았을지. 물론 그러기엔 당시 불교가 너무 권력화, 세속화 되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겠다.
"신의" 드라마를 통틀어 철학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가장 많아 보이는 인물이 바로 기철이다. 악역으로 시작했다 할지라도, 기철의 번뇌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고(쇼펜하우어의 "의지" 개념에 따르자면) 그러다보니 기철의 생각이나 고민하는 문제가 1차원적인 단순 악역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공민왕과 최영을 위시한 선의 축들이 행동하는 패턴은 결국은 예측가능한 교과서적인 답을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그 속에서 다양한 변주와 반전이 일어나긴 하지만 전반적인 큰 틀로서 "선"이란 카테고리를 벗어나진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철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인물이라기 보다 메타포에 가까운 기철, 그러다보니 여태까지 드라마 상에서 결정적으로 사고친 일도 없고(실제 나쁜일은 덕흥군이 다 하고 사라짐) 악인으로서 뚜렷한 증오와 분노를 불러일으킨 적도 없고, 전체적으로 마치 물 위에 떠있는 기름처럼 극에 둥둥 떠서는 허무와 공허함만 줄창 외쳐대고 있다. 그래서 기철이 나올때면은(특히,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몸부림치는 장면) 시청자와 브라운관 속 드라마와의 거리가 어느정도 담보되는 TV드라마가 아니라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1인극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굳이 최영, 공민왕, 원나라, 사형제들과의 관계를 떠올리지 않아도, 굳이 "신의"라는 드라마와 연관시키지 않아도, 기철의 고뇌는 한편의 독립된 모노드라마이자 개인 플레이로 기능한다.
이점이 바로 기철이 드라마 속에 잘 녹아들지 못하고 뭔가 겉도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일차적 이유가 아닌가 한다. 기철은 악당이기보다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표상 그 자체이다. 의선에 대한 집착 또한 이성적, 논리적인 계산이 아니라 직관과 상상력에 기반한 근거없는 믿음에서 나온다. 의선을 붙잡아서 같이 하늘 세상을 간다고 해서 기철 자신이 바라는 세상이 펼쳐진다는 점, 그곳에서는 그런 심병을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적으로 하늘 세상으로 가고자 한다. 그러면서 한번 사는 인생, 죽더라도 하늘 세상 꼭 한번 가보고 말겠다는 대단히 집요한 의지의 추구를 보여준다. 기철의 욕망은 그래서 추상적이고 비실제적이며 동시에 관념에 가깝다. 기철을 공민/최영 축과 대립하는 단순한 악인으로 치부하기엔 그가 던지는 화두가 너무나도 (극에 안 어울리게) 철학적, 실존적이다.